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으며,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2018년 우리나라 7개의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는데 법주사가 그중 한 사찰이기도 하다.
법주사에는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
단풍이 물든 법주사 입구 등산로에 들어서고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일주문이 길 한가운데 서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금강문이 나오는데 금강문을 통과하면 법주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법주사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사천왕문이 보이고 그 앞으로 팔상전, 쌍사자석등, 사천왕석등, 대웅보전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또한 좌측으로 금동미륵대불이 우측으로 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는 가을을 대표하는 국화와 꽃들이 다양한 장식으로 곳곳에 여러 건물들과 조화롭게 배치되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금동미륵대불
화강석으로 만든 기단 위에, 높이 약 25m, 무게 약 160톤의 국내 최대 규모의 청동대불이 자리하고 있다.
조성 당시, 불신을 13등분 하고 다시 각 등분한 것을 4조각으로 나누어 총 52조각을 용접하고 이어 붙여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식이 심해 불상에 금박을 입히는 개금불사를 통하여 2002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법주사의 국보와 보물
대웅보전(보물)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하고, 인조 2년(1624년)에 임진왜란 때 불타 소실된 것을 벽암대사가 중창한, 총 120간, 건평 170평, 높이 약 20m에 이르는 대규모의 불당이다.
내부에는 앉은키가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최대 소조불좌상 3신불이 안치되어 있다.
팔상전(국보)
현존하는 국내 유일한 5층 목탑으로 사찰 창건 당시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하며, 신라 혜공왕(12년) 때 진표율사가 중창했었으나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부터 사명대사(송운 유정)과 벽암대사에 의해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다시 복원된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목탑 내부에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가 목탑 네 면에 두 폭식 배치되어 있다.
쌍사자석등(국보)
신라 성덕왕 19년(72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 서서 석등을 받들고 있는 형태의 높이 3.3m의 8각 석등으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하나의 돌로 조각 하였으며,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랜된 걸작이다.
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신라시대 석조 예술품 중 뛰어난 걸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천왕석등(보물)
신라시대 전형적인 팔각 석등 양식으로 3.9m 높이로, 연꽃이 조각된 대칭의 밑받침돌과 위 받침돌 위에 네 면에는 창이 다른 네 면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석련지(국보)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1.95m, 두레 6.65m의 석조 조형물로, 다양한 형태의 받침석이 연꽃 모양의 돌확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의자에 앉아 있는 보기 드문 모습의 6m의 바위에 새겨진 고려 시대 마애불
철확(보물)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다고 전해오는 높이 1.2m, 직경 2.87m, 두께 10.8cm의 거대한 쇠솥
희견보살상(보물)
신라 33대 성덕왕 19년(720년)경에 조성된 약 2m의 붉은 화강석으로 만든 입상으로,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이다.
국보(3점)
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
보물(14점)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 병풍
대웅보전
원통보전
법주괘불탱화
소조삼불좌상
목조관음보살좌상
철확
복천암 수암화상탑
법주사 희견보살상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
법주사 동종
소조사천왕상(천왕상4구)
법주사 내에 설명판에는 보물이 13점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소조사천왕상이 2023년 추가로 보물로 지정되어 법주사 보물은 14점이 되었다.
보물 지정이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수정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