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제암리에서도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그 후 독립 만세 운동과 저항이 계속되자 이를 구실로 아리타 중위가 이끄는 일본군은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교회에 주민들을 모아 놓고 총을 쏘고 불을 질러 학살하였다.
이 학살로 29명(제암리 주민 23명, 고주리 주민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여러 마을이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일본은 제암리 학살 사건을 두고 독립운동에 따른 저항으로 어쩔 수 없는 발포였고 그로 인한 화재로 가옥이 불탔다고 거짓으로 사건을 은폐하였다.
그러나 수의사이자 선교사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일행에 의한 기록과 사진들, 조선군 사령관을 지낸 우쓰노미야 다로의 일기가 발견되면서 모두 거짓임이 세상에 알려졌으나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제암리 학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외국 여론의 악화로 어쩔 수 없이 눈속임 용으로 일본 군사 재판에 회부된 아리타 중위는 일본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독립운동역사문화공원
제암리 3.1운동 기념관이 제암교회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나 독립운동기념관이 개관하면서 이전하였다.
3.1운동 순국기념탑 - 제암리 학살 현장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1983년 건립된 기념탑
3.1운동 순국 23위지묘 -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23인의 순국선열의 발굴 유해가 안장된 합동 묘
자유롭게 저 하늘을 - 제암리 순국선열 23인을 기리기 위한 조각물
스코필드 동상 - 캐나다 출신의 수의사이자 선교사로 제암리 학살을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겨 제암리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스코필드는 일본의 위협에 본국인 캐나다로 귀국한 뒤 195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입국하여 서울대학교 수의과에서 맡아오다, 1970년 81세로 세상을 떠나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일제강점기 화성지역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화성의 독립운동과 저항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사실을 연구하고 전시하기 위하여, 제암교회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제암리3.1운동기념관을 확장 이전하여 2024년 4월 15일에 개관하였다.
휴관일 : 매주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시실은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어린이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건물이 없고 지하에 기념관을 지었다.
상설전시실
일제강점기 화성 지역의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과 저항의 역사를 관람할 수 있다.
1919년 4월 15일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
상설전시실 내 제암리 학살 사건을 4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하니 꼭 보길 권한다.
기획전시실
개관 기념으로 '어느 독립운동가의 삶과 일상'을 주제로 기획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어린이전시실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25명 정원에 하루 6회 운영되고 있으며, 정원 미달 시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부대시설
카페테리아
주차장 - 지상에 건물이 없어 주차장은 넓은 편이며 대형 버스도 주차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기념관으로 내려가는 입구 쪽으로 실외 화장실이 있다.